*. 어떤기간에는 희한하게 매우 다양한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다양한 생각을 발설하는 것이 유익할 듯.
1. 10진법에서 0을 제외한 모든 자연수는 각 자리수의 합을 계속 더하면 1부터 9까지 나온다.
(같은 말 : 10진법에서의 자연수를 9로 나눈 나머지는 0부터 8까지 있다.)
1-1. 이 것을 원의 가장자리에 배치하여 같은 수를 더하는(일종의 구구단의 각자리 합) 것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법칙을 얻을 수 있다.
2. 자연수에 제곱 세제곱을 하여도 각 자리수의 합이 같으면 동일한 이동을 한다.
예 : 5 (5) -> 25 (7) -> 125 (8) -> 625 (13 -> 4) -> 3125 (2)
예 : 14 (5)-> 196 (7) -> ....
2-1. 5의 제곱과 14의 제곱과 95의 제곱의 각 자리 수의 합은 같다.
2-2. 그런데 주의할 점은 각 자리의 제곱이 같다고 하여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러한 겹치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 : 13 (4) -> 169 (7) 4*4=16(7)
예 : 14 (5) -> 196 (7) 5*5=25(7)
충분히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하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옳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으므로 이것만 가지고는 당장 에러가 발생한다.
ex> 자리수의 합이 1인 자연수의 세제곱 + 각자리수의 합이 2인 자연수의 세제곱 = 각자리수의 합이 9인 자연수의 세제곱
3. 1-1.을 원형으로 표현하면, 초등학생 수학책에 나오는 것이 된다. 여기서 9는 단일원, 1-8(구각형), 2-7, 3-6(삼각형), 4-5 가 묶인다.(각 특징이 회전방향이 반대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두 수의 합은 당연히 9이다.)
> 글의 목적
김천어 님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고, 또 김천어 본인도 '시국이 흉흉해서'라고 일단 해명하기는 하였으나,
그러하다면 어느 개인이 USB 8GB 잃어버리고 추모제 갔다 온 후 정신줄 놔 버린 뒤, 일상적인 숙제도 잡히지 아니한다고 글을 난삽하게 써버렸다면, 그 개인도 비판받을 자격이 있지 아니한가(웃음)
위 글은 논점만 난잡하게 삽입한 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대부분 정론없이 엇갈리는 것들이다.
일단 주요 논점을 잡아보자.
위 글은 논점만 난잡하게 삽입한 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대부분 정론없이 엇갈리는 것들이다.
일단 주요 논점을 잡아보자.
0.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개념잡기
어물전이라는 블로그의 전 포스트가 그러하지만, 기본적으로 외래어적인 표현 내지 일상적인 표현을 우리나라 고유의 방식인 한자식 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 사용례를 인용구 식으로 표현하여 쓰고 싶지만, "드래그 앤 드롭"이 막힌 관계로(사실 그 제한을 푸는 프로그램을 쓰고 싶지만, 이곳은 도서관이다.) 그냥 단순히 나열하기로 한다.
노종(盧宗) : 노무현을 지칭한다. 그 유래는 2002년부터 있어왔다. 미디어몹의 ZBS에서는 '노종실록'이라고 하여 패러디 동영상 시리즈를 2005년까지 만든 적이 있다.
상례(常禮) : '일상적인 관습대로'로 해석된다. 주의할 점은 喪禮와 혼동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점이다. 김천어 님께서 우리말 단어를 오래된 어투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동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종(盧宗) : 노무현을 지칭한다. 그 유래는 2002년부터 있어왔다. 미디어몹의 ZBS에서는 '노종실록'이라고 하여 패러디 동영상 시리즈를 2005년까지 만든 적이 있다.
상례(常禮) : '일상적인 관습대로'로 해석된다. 주의할 점은 喪禮와 혼동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점이다. 김천어 님께서 우리말 단어를 오래된 어투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동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1. 글의 구조(사실 진짜 비판하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니다. 2. 로 건너 뛰어도 좋다.)
본 글에서의 주제는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하라'는 제목에 걸맞게 현재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지만, 현재의 행태 중 딱히 무엇을 꼬집는지는(무엇때문에 다시 광기에 휩싸이고 있다는 지는) 정확하게 제시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그 글에 댓글을 다셨던 Excretion 님의 블로그에는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지 표현하고 있어서 인용하겠다.
1. '노무현의 죽음'을 반이명박세력의 죽음으로 묘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2. 그럼에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하여 -김천어의 사견상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 측면이 있고 인간적인 측면을 별론이라고 하였지만서도 - 훌륭한 대통령이어서 조문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3. 여기서 노무현의 죽음을 두고 이명박을 탄핵하자는 세력에 대하여 2002 대선결과와 2007 대선결과를 통하여 비판한다.
4. 또한 3에 보충하여 아무리 이명박이 무능하더라도 1년전의 포스트를 근거로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 정책이 아닌 무능을 이유로 탄핵을 주장하는 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한다.
5. 지금 노무현의 죽음이 이명박의 잘못임은 분명한데, 노무현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러한 차악도 비판하여야 한다(물론 비판의 강도는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지금의 추모분위기가 허용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6. 민주주의의 전제요소로써 토론과 관용을 먼저 설명한다. 그 후 현재의 진보세력과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세력 간에는 이러한 토론과 관용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동시에 진보세력의 가치와 현실의 진보세력의 행태를 비교한다(여기에는 현실질서의 파괴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존재하는데 언급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세력의 역할을 주장한다. 노무현이 말한 '화해와 용서, 통합'이 현실적으로 되고 있는지 비판하면서, (되고있지도 않은데 하는 이러한 주장은) 파시즘이라고 한다.
7. 현재의 생각에서 감성을 배제하여야 파시즘이 활개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주제가 제시된다. 선거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논리는 비민주적이라고 가정하고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한다. 이 생각을 선거뿐 아니라 모든 것에 확장하는 논리를 피는 듯 하다.
8. 노무현의 죽음이 6,7에 제시된 대로 오히려 파시즘적 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한다.
단순히 보면 1~4까지는 유기적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은데, 4 5 6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기며 글의 주제가 혼동이 될 수 있다.(어찌보면 논점이 세가지이다.) 뭐 모든 국민이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상황이라 제시되는 것이 많을 수 있지만, 파시즘이라는 식으로 확장되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을까.(사실 이 문제는 작가의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 뭐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현재의 상황은 매카시가 한쪽에 나오고 반대쪽엔 레닌과 트로츠키가 나와서 서부전선처럼 참호를 길게 파놓고 서로 이바구를 찧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산 사람도 아니고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서. 이같은 모리배 짓거리가 망자와 유가족에게는 당연히 민폐일 것이고, 듣는 사람들도 참 역겨운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http://ex2nd.textcube.com/9/trackback/이 사태를 두고 다음 구조로 글이 구사된다.
1. '노무현의 죽음'을 반이명박세력의 죽음으로 묘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2. 그럼에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하여 -김천어의 사견상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 측면이 있고 인간적인 측면을 별론이라고 하였지만서도 - 훌륭한 대통령이어서 조문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3. 여기서 노무현의 죽음을 두고 이명박을 탄핵하자는 세력에 대하여 2002 대선결과와 2007 대선결과를 통하여 비판한다.
4. 또한 3에 보충하여 아무리 이명박이 무능하더라도 1년전의 포스트를 근거로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 정책이 아닌 무능을 이유로 탄핵을 주장하는 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한다.
5. 지금 노무현의 죽음이 이명박의 잘못임은 분명한데, 노무현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러한 차악도 비판하여야 한다(물론 비판의 강도는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지금의 추모분위기가 허용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6. 민주주의의 전제요소로써 토론과 관용을 먼저 설명한다. 그 후 현재의 진보세력과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세력 간에는 이러한 토론과 관용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동시에 진보세력의 가치와 현실의 진보세력의 행태를 비교한다(여기에는 현실질서의 파괴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존재하는데 언급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세력의 역할을 주장한다. 노무현이 말한 '화해와 용서, 통합'이 현실적으로 되고 있는지 비판하면서, (되고있지도 않은데 하는 이러한 주장은) 파시즘이라고 한다.
7. 현재의 생각에서 감성을 배제하여야 파시즘이 활개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주제가 제시된다. 선거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논리는 비민주적이라고 가정하고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한다. 이 생각을 선거뿐 아니라 모든 것에 확장하는 논리를 피는 듯 하다.
8. 노무현의 죽음이 6,7에 제시된 대로 오히려 파시즘적 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한다.
단순히 보면 1~4까지는 유기적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은데, 4 5 6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기며 글의 주제가 혼동이 될 수 있다.(어찌보면 논점이 세가지이다.) 뭐 모든 국민이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상황이라 제시되는 것이 많을 수 있지만, 파시즘이라는 식으로 확장되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을까.(사실 이 문제는 작가의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 뭐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 최선과 차악, 최악을 선택하는 메카니즘에 문제가 있다면 어찌되는 것일까.
우선 다음 아고라의 '경제학 이론으로 본 노무현의 딜레마'라는 글을 읽어보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04867
메커니즘 이론을 구사하여 노무현 자살의 딜레마를 설명하고 있는데(타살논란은 빼두고),
이 이론을 전제로 하여 대선을 바라본다면 어찌되는 것일까. 민주주의의 맹점이라는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토론과 관용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이론을 적용한다면 토론과 관용은 어떠한 결과에서도 '최선'을 선택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메카니즘은 왜곡되고 악용되며, 다른 목적을 위하여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생각보다 이러한 경우는 많다. 재작년 대선당시에 '정치도 CEO에 맡겨야지' '경제를 생각한다면 CEO출신에게'라는 문구가 유행했었다. 물론 투표자의 입장에서 고려하는 것은 이보다 많지만, 비교하기 쉽게 2가지로만 놓고 보자. 선택할 수 있는 후보는 여럿이지만, 선택의 결과는 동일하게 된다.
선택은 정치와 경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에도 있다. 문제는 그 토론에서의 최선과 차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 되는가에 있다. 일반적인 TV토론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100분토론에는 적어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동수로 출연하여 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아무리 TV토론상 동수를 맞추었다고 하여도 그 두 진영간에는 권위의 차이(비중의 차이)와 논거의 정당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도 토론을 시청한 사람은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약간은 다른 토론도 생각해보자. 작년부터 광장에서 유행하는 시민발언 형식이다. 시민발언의 성질을 생각한다면 토론이라는 형식보다는 공감형성이라는 형식에 가깝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마녀사냥의 형식내지 인민재판의 형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존재하지만, "진정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다면" 시민간 견해차이 인정 및 공감형성은 더욱 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간에서 공감을 형성하며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 속에서 파시즘이 형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04867
메커니즘 이론을 구사하여 노무현 자살의 딜레마를 설명하고 있는데(타살논란은 빼두고),
이 이론을 전제로 하여 대선을 바라본다면 어찌되는 것일까. 민주주의의 맹점이라는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토론과 관용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이론을 적용한다면 토론과 관용은 어떠한 결과에서도 '최선'을 선택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메카니즘은 왜곡되고 악용되며, 다른 목적을 위하여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생각보다 이러한 경우는 많다. 재작년 대선당시에 '정치도 CEO에 맡겨야지' '경제를 생각한다면 CEO출신에게'라는 문구가 유행했었다. 물론 투표자의 입장에서 고려하는 것은 이보다 많지만, 비교하기 쉽게 2가지로만 놓고 보자. 선택할 수 있는 후보는 여럿이지만, 선택의 결과는 동일하게 된다.
선택은 정치와 경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에도 있다. 문제는 그 토론에서의 최선과 차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 되는가에 있다. 일반적인 TV토론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100분토론에는 적어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동수로 출연하여 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아무리 TV토론상 동수를 맞추었다고 하여도 그 두 진영간에는 권위의 차이(비중의 차이)와 논거의 정당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도 토론을 시청한 사람은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약간은 다른 토론도 생각해보자. 작년부터 광장에서 유행하는 시민발언 형식이다. 시민발언의 성질을 생각한다면 토론이라는 형식보다는 공감형성이라는 형식에 가깝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마녀사냥의 형식내지 인민재판의 형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존재하지만, "진정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다면" 시민간 견해차이 인정 및 공감형성은 더욱 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간에서 공감을 형성하며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 속에서 파시즘이 형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
3. 파시즘? 포퓰리즘? 아니, 어떤 것도 아니다.
김천어 님께서는 파시즘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우려를 하고 있는데, 파시즘이 전개되는 상황은 아니다. 간단히 위키백과 - 파시즘을 인용하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울릴 듯도 한데... 포퓰리즘도 아니다.
인용글에서는 노무현이 포퓰리즘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포퓰리즘으로 보이지만, 그 정책의 방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가. 노무현의 정책이 이분법적 접근을 사용하였다고 하여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힘있는 대중에 메여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인기상승의 요체며, 다음 정권의 유지에도 도움이 되는데도 노무현은 그것을 포기하였다. 그 결과가 노무현 국민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 때늦은 후회이다.
이것이 선거에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M당이 지금 추모열기에 영합하려 해도, 국민은 노무현이 세운 Woori당을 탈당한 세력들이 결집한 M당을 곱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이 추모열기에 영합할 세력이 없다. 시민들이 안타까워할 뿐 정치적 포퓰리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기껏해야 서울광장개방요구이다, 현재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사안, 법률적 문제는 산적해있지만 요구하는 것이 추모제하게 서울광장 좀 개방해주세요이다;;;)
4. 결론 : 비판하는 나도 시간이 부족하여 논거가 부족할 지 모른다.
현상을 바라보는 것에 여러 관점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사람마다 교과서적인 정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파시즘(이탈리아어: fascismo 파시스모[*] [faʃ'ʃi:smo], 영어: fascism 패시즘[*] [ˈfæʃˌɪz(ə)m])은 국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정치·사회·문화·경제에서 통제하려 하는 현상이다. 파시스트 국가는 생산재를 제어한다. 파시즘은 자국의 국민, 국가, 인종이 이를 구성하는 개인, 기관, 무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찬양한다. 파시즘은 대중적 포퓰리스트 수사법을 사용하여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한 영웅적인 노력을 주문하며 단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여 심지어 개인숭배까지 이른다.현재 노무현 숭배현상을 들어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파시즘의 본질이 국가를 개인보다 우월한 가치라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세뇌하며, 대중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자.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시민들로 부터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국가의 가치를 정부는 강조하지만 시민은 이에 개의치 않고 국가를 비판한다. 정부는 시민들이 국가의 세뇌를 받던 70~80년대를 부활시키고 싶어 하지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고, 인터넷의 발달로 대중은 적극적인 집단지성이 되어버렸다. 어느 사회나 대중들이 어떤 계기로 폭발하는 경우는 있다. 더군다나 2008~2009년 우리나라 광장에서 폭동이 일어난 적은 없다.(폭력시위라 불리는 것은 있었지만, 그리스나 태국같은 폭동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울릴 듯도 한데... 포퓰리즘도 아니다.
http://k.daum.net/qna/view.html?qid=3J9Sd포퓰리즘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만약 지금 상황을 포퓰리즘으로 정의내린다면 현재 목적은 노무현을 이용하여 '정치적 공세'를 펼친다든가 '노무현을 신격화'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동격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포퓰리즘이라고 하기에는 현 상황을 이용하려는 세력의 지지율이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정부분향소, 정당분향소보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분향소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용글에서는 노무현이 포퓰리즘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포퓰리즘으로 보이지만, 그 정책의 방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가. 노무현의 정책이 이분법적 접근을 사용하였다고 하여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힘있는 대중에 메여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인기상승의 요체며, 다음 정권의 유지에도 도움이 되는데도 노무현은 그것을 포기하였다. 그 결과가 노무현 국민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 때늦은 후회이다.
이것이 선거에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M당이 지금 추모열기에 영합하려 해도, 국민은 노무현이 세운 Woori당을 탈당한 세력들이 결집한 M당을 곱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이 추모열기에 영합할 세력이 없다. 시민들이 안타까워할 뿐 정치적 포퓰리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기껏해야 서울광장개방요구이다, 현재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사안, 법률적 문제는 산적해있지만 요구하는 것이 추모제하게 서울광장 좀 개방해주세요이다;;;)
4. 결론 : 비판하는 나도 시간이 부족하여 논거가 부족할 지 모른다.
현상을 바라보는 것에 여러 관점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유민주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사람마다 교과서적인 정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수업에 얽매이다 보니,
usb 메모리 8GB짜리를 분실하였다.
자그마치 이론상 8192MB 속에 석달치 과제물과 이전 블로그 백업, 권장소설 모음집,
민법동영상강좌, 지금은 희귀한 유틸, '사랑중독' 전집(여기까지 4GB),
포터블한 게임,
마지막으로 어쩌다보니 총용량 중 0.01% 도 차지하지 않지만 존재하게 된 불온한 소설(ㅡㅡ;;;)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광고지를 덕지덕지 붙였는데, 제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 하필 그 자리가 cctv 사각지대였던 것인가.
덧 : 공개설정문제;
판례 숙제해야 하는데;;
그것도 헌재판례만 10개씩이나 요약해야 되는데;
헌법재판소 홈페이지가 다운되다니;;;(지금 헌법재판소가 이슈가 되는 판결을 내리지도 않았으니 단순 서버점검일 것같다.)대법 종법정은 다행히 살아있으니 4개부터 하든가;
다른 판례DB를 이용해야 겠다.
그것도 헌재판례만 10개씩이나 요약해야 되는데;
헌법재판소 홈페이지가 다운되다니;;;(지금 헌법재판소가 이슈가 되는 판결을 내리지도 않았으니 단순 서버점검일 것같다.)대법 종법정은 다행히 살아있으니 4개부터 하든가;
다른 판례DB를 이용해야 겠다.
지난 3월 8일에 기존 블로그의 내용을 모두 백업하고, 삭제하였습니다.
(이런 취지를 은유적 표현으로 첫번째 글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기존 블로그에 있던 내용을 검색하셔서 들어오시는 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네, N사 검색을 이용하시는 분이 압도적이어서 일단 N사 고객센터에 삭제요청을 하였습니다.
제일 많이 검색해서 들어오는 듯 한 slax 만 적었지만 내용상 drjekyll.tistory.com 과 관련된 검색결과 모두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유입경로 보면 또 들어올 것 같아서 방문객께서 알고싶어 하실 것들을 좀 적어보겠습니다.
1. so0x(혹시 또 모를 검색을 막기위하여 막겠습니다.)
S0oX는 USB에 설치가능합니다. 6은 USB에 설치하기도 꽤나 쉽습니다. 그런데 부트로더 설정이나 MDR 설정 관련해서 "16bit 도스에서 드라이브를 엑세스 할 수 없다" 이런 메시지가 뜨시는 분들은 다른 유틸리티를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혹 USB에 MDR설정이 불가능한 것도 일부 있다고 들었습니다(루머로 들었습니다);
저는 freedos -M- 5la*로 구성했었습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라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헷갈립니다만...
51aX 모듈은 그 org사이트에서 구하시면 됩니다.
기타 리눅스 관련해서는 kldp.org 를 이용하시거나 구글링, N모 지식검색, D모 지식검색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2. 자전거 관련해서
G모시부터 야구경기장까지 1시간 걸립니다. 초보도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가을까지가 제철입니다.
서울을 끼고 흐르는 강 주변에는 좋은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곳을 달리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검색만 하지 마시고 달리십시오. 다만, 물은 꼭 챙겨가세요.
통근이 가능한지 여부는 체력, 땀, 날씨, 출근데드라인, 거리에 따라 비례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지 여부는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카페를 이용하세요.
도서 중에 서울 근교 자전거 지도같은 것이 나온 것도 있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한 번 스윽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어느 도서의 1/3까지만 사적 복사가 가능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3. 영화/도서리뷰 등
각자가 가지는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됩니다 - 평론가의 관점, 관객의 관점, 사상가의 관점, 검열가의 관점, 애국심에서 비롯한 관점, 영화-사회를 동일시하며 우리 사회도 영화의 마지막처럼 되기를 바라는 관점 등 여러가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논리전개가 틀렸을 때 근거를 들어 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한 느낌 등(좋다, 나쁘다, 멋있다, 역겨웠다, 지루했다, 눈을 뗄 수 없었다)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물론 비난으로 간다면 조금은 달라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각 영화/도서/음반은 재평가받아 스테디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별로 한 적도 없지만, 제가 생각해도 제 리뷰가 잘못되었던 것, 또는 굉장히 격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세요;.
4. 실명(시력을 잃다는 아닙니다)
실명을 검색하시는 분들께서는 근처 분들께 여쭈어보세요.
기존 제 블로그에 게재되었던 실명들은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만, 정작 많이 언급하였던 이니셜은 검색도 별로 없는 듯 하고,
어쩌다가 한두번 썼던 표에 들어갔던 것만 검색이 많군요;; 무섭습니다.
각 실명들은 인명사전, 인명검색을 활용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프로필을
5. 사상 관련
3번과 비슷한 논지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다양하지만, 저의 견해는 다수의 견지에서 벗어나 있어서 위험했지요;
사실 누가 베껴쓸 것만 같았습니다(아무도 안베꼈겠지만). 그러나 해석론은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
200년 전 다산 선생님의 책 중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상에도 과학이 결합되는 통섭이 유행입니다.
통섭적으로도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취지를 은유적 표현으로 첫번째 글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기존 블로그에 있던 내용을 검색하셔서 들어오시는 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네, N사 검색을 이용하시는 분이 압도적이어서 일단 N사 고객센터에 삭제요청을 하였습니다.
제일 많이 검색해서 들어오는 듯 한 slax 만 적었지만 내용상 drjekyll.tistory.com 과 관련된 검색결과 모두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유입경로 보면 또 들어올 것 같아서 방문객께서 알고싶어 하실 것들을 좀 적어보겠습니다.
1. so0x(혹시 또 모를 검색을 막기위하여 막겠습니다.)
S0oX는 USB에 설치가능합니다. 6은 USB에 설치하기도 꽤나 쉽습니다. 그런데 부트로더 설정이나 MDR 설정 관련해서 "16bit 도스에서 드라이브를 엑세스 할 수 없다" 이런 메시지가 뜨시는 분들은 다른 유틸리티를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혹 USB에 MDR설정이 불가능한 것도 일부 있다고 들었습니다(루머로 들었습니다);
저는 freedos -M- 5la*로 구성했었습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라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헷갈립니다만...
51aX 모듈은 그 org사이트에서 구하시면 됩니다.
기타 리눅스 관련해서는 kldp.org 를 이용하시거나 구글링, N모 지식검색, D모 지식검색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2. 자전거 관련해서
G모시부터 야구경기장까지 1시간 걸립니다. 초보도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가을까지가 제철입니다.
서울을 끼고 흐르는 강 주변에는 좋은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곳을 달리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검색만 하지 마시고 달리십시오. 다만, 물은 꼭 챙겨가세요.
통근이 가능한지 여부는 체력, 땀, 날씨, 출근데드라인, 거리에 따라 비례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지 여부는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카페를 이용하세요.
도서 중에 서울 근교 자전거 지도같은 것이 나온 것도 있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한 번 스윽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어느 도서의 1/3까지만 사적 복사가 가능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3. 영화/도서리뷰 등
각자가 가지는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됩니다 - 평론가의 관점, 관객의 관점, 사상가의 관점, 검열가의 관점, 애국심에서 비롯한 관점, 영화-사회를 동일시하며 우리 사회도 영화의 마지막처럼 되기를 바라는 관점 등 여러가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논리전개가 틀렸을 때 근거를 들어 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한 느낌 등(좋다, 나쁘다, 멋있다, 역겨웠다, 지루했다, 눈을 뗄 수 없었다)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물론 비난으로 간다면 조금은 달라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각 영화/도서/음반은 재평가받아 스테디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별로 한 적도 없지만, 제가 생각해도 제 리뷰가 잘못되었던 것, 또는 굉장히 격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세요;.
4. 실명(시력을 잃다는 아닙니다)
실명을 검색하시는 분들께서는 근처 분들께 여쭈어보세요.
기존 제 블로그에 게재되었던 실명들은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만, 정작 많이 언급하였던 이니셜은 검색도 별로 없는 듯 하고,
어쩌다가 한두번 썼던 표에 들어갔던 것만 검색이 많군요;; 무섭습니다.
각 실명들은 인명사전, 인명검색을 활용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프로필을
5. 사상 관련
3번과 비슷한 논지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다양하지만, 저의 견해는 다수의 견지에서 벗어나 있어서 위험했지요;
사실 누가 베껴쓸 것만 같았습니다(아무도 안베꼈겠지만). 그러나 해석론은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
200년 전 다산 선생님의 책 중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상에도 과학이 결합되는 통섭이 유행입니다.
통섭적으로도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으악
내 생각들의 지도가 계산하기 어려운 알게브라 공식에 의하여 지도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밖으로 뛰쳐 나간다
아니 밖에는
밖에는 잠을 자지 않는 손들이 빛을 밝히며 걸어가고 있었다.
기상시간도 아닌데
그 위로 불티타는 신문지 바람이 불었다.
나는 타고 있은 신문지 1면을 잡았다
내가 잡은 동시에 신문지는 다 타버렸다.
내 손도 타고 있었다.
나는 달렸다
나는 내 손에서 불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급한 나머지 나는 거리 위에 날리는 종이 위에 손을 댔다.
내 손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 종이는 불이 붙더니 열려 있는 창고로 날아갔다.
그 창고 안에 있었다던 25879장의 종이는 순식간에 더미(dummy)로 변해버렸다.
일단 나는 안전해졌다. 내 손에는 빛이 나지 않았다.
...나는 다친 것으로 해두자고 생각했다.
하늘 위에서 종이비행기 몇 장이 날아왔다.
2007. 8. 31자이후의 고소장이었다.
내용들은 그 창고에 있던 자기 소유의 몇몇 종이가 같이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창고주인에게서 고소장이 날아올까 무서워서 명패를 봤다.
내 이름이 써져있었다.
'왜곡' 참조 : 리얼 atlas 리얼 world
참조 : 2007. 8. 30 선고, 2004헌가25 전원재판부에 의해 실화책임에관한법률은 효력이 중지먹었다.)
ps : 원래는 이런 내용으로 쓸려고 한 것이 아닌데;;;
내 생각들의 지도가 계산하기 어려운 알게브라 공식에 의하여 지도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밖으로 뛰쳐 나간다
아니 밖에는
밖에는 잠을 자지 않는 손들이 빛을 밝히며 걸어가고 있었다.
기상시간도 아닌데
그 위로 불티타는 신문지 바람이 불었다.
나는 타고 있은 신문지 1면을 잡았다
내가 잡은 동시에 신문지는 다 타버렸다.
내 손도 타고 있었다.
나는 달렸다
나는 내 손에서 불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급한 나머지 나는 거리 위에 날리는 종이 위에 손을 댔다.
내 손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 종이는 불이 붙더니 열려 있는 창고로 날아갔다.
그 창고 안에 있었다던 25879장의 종이는 순식간에 더미(dummy)로 변해버렸다.
일단 나는 안전해졌다. 내 손에는 빛이 나지 않았다.
...나는 다친 것으로 해두자고 생각했다.
하늘 위에서 종이비행기 몇 장이 날아왔다.
2007. 8. 31자이후의 고소장이었다.
내용들은 그 창고에 있던 자기 소유의 몇몇 종이가 같이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창고주인에게서 고소장이 날아올까 무서워서 명패를 봤다.
내 이름이 써져있었다.
'왜곡' 참조 : 리얼 atlas 리얼 world
참조 : 2007. 8. 30 선고, 2004헌가25 전원재판부에 의해 실화책임에관한법률은 효력이 중지먹었다.)
ps : 원래는 이런 내용으로 쓸려고 한 것이 아닌데;;;
